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메레르급 전열함 (문단 편집) === 아메리카급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MS_Northumberland_battle.jpg|width=100%]] ----- 1812년 5월 22일 전투 당시의 1번함 HMS 노섬벌랜드. 그림의 맨 오른쪽 함선이다. 나머지 세 척은 프랑스 함선들로, 왼쪽부터 맘루크, 그리고 침몰 중인 아리아네와 앙드로마크다. 당시 노섬벌랜드는 프랑스 그화(Groix)의 해안에서 [[해상봉쇄]]를 수행하던 중 [[통상파괴]]를 위해 막 출격한 프랑스 해군의 팔라급 40문급 프리깃 아리아네와 앙드로마크, 그리고 16문 [[브릭]]선 맘루크와 조우하였으며, 12문 브릭선 그라울러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까지 전투를 치러 아리아네와 앙드로마크 두 척을 침몰시켰다. 프랑스 프리깃들은 해안포대의 도움을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 함선은 각자 시간차를 두고 탄약고가 유폭해 굉침당했다. 브릭선 맘루크도 흘수선 아래에 여러 발의 포탄을 맞아 침몰 직전까지 몰렸지만 무장과 짐을 바다에 갖다버리고 전속력으로 내달려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전함)|진수된 지 1년만에 파괴된]] 이 두 운 없는 프리깃들의 잔해는 1986년에 발견되었고 1996년에 일부가 건져졌다. 현재는 셸부르에 위치한 '바다의 도시(Cité de la Mer)' 해양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 1794년 노획한 테메레르급 기본형 아메리카함을 기반으로 복제한 함급. HMS 노섬벌랜드, HMS 리나운 2척이 건조되었다. 1번함 HMS 노섬벌랜드는 1798년 바나드에서 건조되었다. 1801년 몰타 점령에 종군한 것을 시작으로 대서양과 지중해의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특히 1806년 벌어진 카리브 해의 생 도밍그 해전에서는 리워드 섬 전대의 전대장 알렉산더 코크란 소장의 기함으로 참전하여 함대의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1805년의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스페인 해군 전열함 세력의 등뼈를 부러뜨렸지만 모든 프랑스 주력함들이 용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대서양 함대의 모항인 브레스트 항의 전열함대는 전력을 온존했고, 실제로 트라팔가 전투 얼마 후인 1805년 말에는 이미 카리브의 영국 상선단을 습격해대고 있었다. 이에 존 토마스 덕워스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이들을 격멸하기 위해 출동했다. 기함은 HMS 수퍼브 함이었다.[* 위의 폼페이급 수퍼브 함 맞다.] 1805년 12월 26일 레섹(Leissègues) 제독의 프랑스 함대를 발견한 덕워스 제독은 주변의 영국 함선들을 소집했고, 노섬벌랜드는 HMS 아틀라스[* 듀크급 98문 2급 전열함의 4번함. 다만 1802년에 74문급으로 개조되어 1806년 당시에는 3급 전열함으로 재분류되었다.] 함과 함께 1806년 1월 12일 그의 함대에 합류했다. 한편 프랑스 해군은 아조레스 해의 겨울 폭풍을 피해 생 도밍그에 숨어 함선을 수리하고 낙오된 함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영국 해군의 기습에 대비해 해안을 따라 전열함들을 일렬로 배치했고, 해안과 전열함 열 사이에 프리깃들을 정박시켰다. 그러나 레섹 제독의 명으로 몇 척의 함선은 자메이카 방면으로 떠나 있었기에 정박 중인 전열함은 고작 다섯 척이었고, 많은 수의 선원들, 심지어 레섹 제독과 그의 함장들은 뭍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덴마크 [[스쿠너]] 하나가 이 모습을 보고 도망쳐 덕워스의 영국 해군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7척의 전열함을 포함한 영국 함대가 생 도밍그를 덮쳤다. || [[파일:800px-Battle_of_Santo_Domingo_(French_and_British_ships).jpg|width=100%]] ----- 전투 개시 직후 임페리알에 달려든 노섬벌랜드 || 전투 개시와 동시에 2열로 나눠진 영국 함대에서 노섬벌랜드는 프랑스 함대와 가까운 서쪽 열에서 두번째 위치에 있었다. 전위에 위치한 기함 수퍼브 함이 프랑스 해군 함렬의 전위에 위치한 알렉상드르 함[* 토낭급 80문 전열함의 7번함.]에 포격을 개시한 것을 신호로, 노섬벌랜드는 바로 뒤에 따라오던 HMS 스펜서[* 74문 3급함.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인 함선 설계자 장루이 바랄리에가 설계했다. 프랑스인이 설계한 만큼 테메레르급과 맞먹는 1900톤급의 큰 함선이었다.] 함의 엄호 속에서 알렉상드르 함의 바로 뒤에 있던 프랑스 함대의 기함 [[오세앙급 전열함|오세앙급 118문 1급 전열함]] 임페리알 함에 달려들어 15분간 맹렬한 포격을 퍼부었다. 곧 이 모습을 본 알렉상드르 함이 수퍼브와 전투를 벌이다 말고 노섬벌랜드와 스펜서의 사이에 끼어들어 종사를 먹이기 위해 함렬을 이탈했으나 이를 곧바로 눈치챈 스펜서 함이 배를 꺾어 알렉상드르의 측면으로 돌진하곤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내 일대 전체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노섬벌랜드는 수퍼브와 함께 스펜서를 지원하고자 몇 발의 대포를 쏘았지만 자욱한 연기로 인해 목표를 맞추지 못했고, 오히려 스펜서를 오인사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임페리알 함이 1급함의 압도적인 일제포격을 준비하며 정신이 딴 데 팔린 수퍼브를 향해 측면을 조준했다. 이 포격이 성공했으면 기함의 무력화와 함께 영국 해군이 혼란에 빠졌을 것이며 승리를 장담하기도 힘들어졌을지 모른다. 특히 임페리알은 상갑판의 12파운더 포들을 모조리 '''18파운더'''로 교체한 첫 번째 1급 함선이었기에, 스페인 해군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가 이미 용궁으로 간 1806년 시점에서는 '''사실상 전 세계의 어느 함선들보다도 우월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코크란 소장이 신속하게 노섬벌랜드를 임페리알 함과 수퍼브의 사이로 몰아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며 임페리알의 압도적인 포격을 '''대신 받아냈고''', 덕분에 수퍼브와 덕워스 제독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제사격으로 노섬벌랜드는 만신창이가 되어 표류하며 전투에서 사실상 이탈했다. 노섬벌랜드는 이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영국 함선으로, 21명의 선원이 사망했고 74명이 부상을 입었다. 큰 피해를 입은 노섬벌랜드가 무력화된 대신 영국 해군 우함렬의 함선 HMS 카노푸스[* 토낭급 80문 전열함 6번함. 알렉상드르의 동형함이지만 포가 4문 더 많다. 프랑스 해군함이었으나 건조된 지 고작 반년 후 [[아부키르 만 해전]]에서 노획되어 영국 해군의 80문 3급함이 되었다.], HMS 도네갈[* 노획된 테메레르급 전열함.], HMS 아틀라스 및 뒤쳐졌던 HMS 아가멤논[* 아덴트급 64문 3급 전열함 3번함. 넬슨 제독이 함장 시절 몰았기에 애정을 많이 가졌던 배다. 트라팔가 해전에도 참전하여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시류에 밀려 도태되던 64문함이었기에 넬슨이 몰던 1793년 당시에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생 도밍그 전투에서도 관리 부실로 인해 속도가 매우 떨어져 있었고, 이 때문에 더 큰 다른 함선들을 못 쫒아가 전투가 거의 끝난 다음에야 전장에 도달했다. 결국 이 시대를 잘못 만난 작은 함선은 전투 이후 브라질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1809년에 [[라플라타 강]] 하구에서 좌초되었다.]이 난전에 참여하여 프랑스 해군의 함렬에 파고들어 그때까지 저항하던 알렉상드르의 항복을 받아내고, 종사를 날려대며 돌진하여 후미의 브레이브[* 테메레르급의 대형화 모델인 카사드형 2번함.], 주피터 함[* 테메레르급. 이 전투의 결과 영국에 노획되었다. 그리고 1807년 영국의 코펜하겐 공격 당시 육전대를 상륙시켜 덴마크군 포대를 공격했다. ]마저도 항복시켰다.[* 이때 아틀라스 함은 충각 공격을 두 번이나 실시했다. 우선 도네갈 함의 맹렬한 공격을 피해 달아나던 주피터 함을 '''들이받아''' 진로를 가로막고 항복시켰다. 그리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임페리알 함을 공격하던 도중 갑자기 나타난 디오메데 함에게 일제 사격을 받아 혼란에 빠졌다가 아군인 카노푸스 함을 [[팀킬|들이받기도 했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다.] 남은 프랑스 함선은 임페리알과 디오메데[* 테메레르급.] 두 척 뿐이었지만 이들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승산이 없음을 직감한 두 함선은 영국 해군의 사격범위를 피해 환초 내부로 피했으나 좌초되었고, 곧 수병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대부분이 부상자였기에 이 탈출 행렬은 수 일간 이어졌다. 그리고 탈출한 프랑스 해군 수병들을 수용하기 위해 보내진 영국 보트들은 두 함선의 남은 잔해를 불태워버렸다. 그 후 1807년에는 덴마크의 카리브해 식민지들을 점령했고, 전쟁이 끝난 직후 HMS 벨레로폰에게 항복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넘겨받아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